2008년 05월 05일
테드창,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판타스틱 1주년 기념호가 나왔다. 여러 모로 알차고 새로운데 특별 부록인 케이스도 그렇고기발한 표지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수록 작품들이 맘에 든다. 농촌을 배경으로 한 호러물 <검은 실>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이번 호에서 최고라고 꼽을 수 있는 것은 테드 창의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작품은 후와드 이븐 압바스 라는 인물의 1인칭 서술로 시작된다.
오오, 위대한 칼리프시여, 대교주시여, 미천한 저에게 이렇게 알현을 허락해주셔서 황송하기 그지없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이보다 더한 복을 받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고해드릴 이야기는 실로 기이하기 짝이 없는 것이고, 설령 그 자초지종을 눈가에 문신으로 새겨 넣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보여주는 기이함은 그것이 말하는 경험의 기이함을 넘지 못합니다. 이 이야기는 경고로 받아들이는 자에게는 경고가 되고, 배우려고 하는 자에게는 배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를 연상케 하는 이 기이한 이야기는 서술자가 바그다드에 있는 한 가게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생전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한 가게에서 주인인 바샤라트는 주인공에게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의심하는 주인공에게 ‘세월의 문’을 보여준다. 문 양쪽이 20년의 세월로 격리되어 있는 그 문을 통과하면 20년 전, 혹은 20년 후의 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바샤라트는 이전에 카이로에도 점포를 가지고 있었고, 그 가게에도 세월의 문이 있었는데 주인공에게 그 곳에서 세월의 문을 통과하여 미래를 방문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 준다.
행운을 만난 밧줄 직공의 이야기
밧줄을 꼬아서 살아가는 하산이라는 청년이 20년 후의 카이로를 방문하여 상인으로 성공한 자기 자신을 만난다. 20년 후의 하산은 청년 하산에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해 주었고 그 지시를 따른 하산은 크고 작은 난관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년 후의 하산은 젊은 하산에게 보물이 묻혀 있는 장소를 알려 주는데……
자기 것을 훔친 직조공 이야기
호화로운 생활을 동경하던 아지브라는 직조공은 하산의 이야기를 듣고 세월의 문을 지나 20년 뒤로 간다. 나이 든 자기 자신이 크게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으리라 생각했던 아지브의 예상과 달리 그는 원래 살던 집에서 간소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살림살이와 달리 돈을 저금해 놓은 통 안에는 금화가 가득 있었다. 이렇게 부자이면서 즐길 줄 모르는 나이든 자신에게 분노한 아지브는 그 돈을 모두 훔쳐 20년 전으로 돌아오는데……
아내와 그녀의 연인 이야기
하산의 아내 라니야는 어느 날 남편이 남편과 꼭 빼 닮은 청년과 식사를 하는 광경을 목격하고 남편의 부정을 의심한다. 남편에게 힐문한 그녀는 믿지 못할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 청년이 바로 젊은 시절의 하산이라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젊은 하산을 바라본 라니야는 젊은 시절의 하산에게 욕망을 느끼게 되고, 세월의 문을 통과하여 20년 전의 과거로 가게 된다. 젊은 하산의 뒤를 밟던 그녀는 그가 목걸이를 팔고자 흥정하는 광경을 목격하는데 그 목걸이는 결혼한 후 얼마 되지 않아 그녀가 선물 받은 것과 같은 목걸이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목격한 것은 라니야 뿐만이 아니었다. 그 목걸이를 포함한 금은보화는 본시 도둑패가 훔친 것이었고 자신들이 도둑맞은 보화를 되찾으려던 도둑 일당 역시 그 모습을 목격하고 하산을 죽이려 하는데……
이 이야기를 들은 후와드 이븐 압바스는 자신도 세월의 문을 통과하고 싶다고 느끼게 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그가 가고자 한 것은 20년 전의 바그다드였다. 20년 전 아내와 다툰 후 아내에게 심한 말을 하고 교역을 위해 집을 떠난 지 며칠 뒤, 아내가 무너진 모스크 벽에 깔려 숨을 거두었기 때문에 그는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았고, 과거를 방문함으로써 이를 바꿔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바샤라트는 이는 불가능하다고, 왜냐하면 20년 전에는 바그다드에 이 문 자체가 없었으므로 과거로 갈 수 있는 것은 고작 이 문이 만들어진 1주일 전 뿐이라고 말한다. 또한 과거도, 미래도 이미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것이며, 다만 더 잘 알 수 있는 것뿐이라고……
*시간 여행은 SF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이다. 이 작품 역시 천체물리학의 웜홀을 이용한 시간여행 이론을 바탕으로 쓰였지만, 비슷한 소재의 다른 작품들이 과학적인 것에 치중하여 어렵고,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진 것과는 달리 이 작품은 ‘이야기’에 좀 더 중점을 두어 SF에 대해 잘 모르거나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은 물론, 인간의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물음까지도 던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다!
자신의 돈을 훔쳐 온 아지브가 왜 20년 뒤에는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인지, 하산은 어떻게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과연, 후와드 이븐 압바스는 20년 전의 바그다드에 방문할 수 있을지,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 궁금한 분은 서점으로 Go!
테드 창, 김상훈 역,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판타스틱”vol. 11, 2008. 5.
Ted Chang, The Merchant and the Alchemist’s Gate, 2006
# by | 2008/05/05 20:54 | 독서생활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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