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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展-당신이 상상하는, 딱 그만큼만의 라틴 아메리카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얼마만큼의 사전 지식을 갖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있어 라틴아메리카는 아직도 미지의 땅이다. 방학마다, 휴가마다 너도나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나는 요즘에도 라틴 아메리카는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지는지...나뿐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라틴 아메리카는 축구, 커피, 바나나, 삼바 같은 단편적인 이미지에 불과할 것이다. 아직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이 남아있는 사람이라면 마야 문명, 유럽에게 침략당해 오랜 식민지 기간을 겪었던 역사, 식민지 농업, 이 과정에서 생겨난 혼혈인인 메스티소와 물라토에 대해 기억해 낼 것이고, 20세기에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국가에서 일어났던 혁명에 대해 알고 있거나, 최근의 경제 상황 등에 대해 알고 있다면 아마 평소에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 보르헤스나 이사벨 아옌데를 비롯해서 많은 라틴 아메리카 작가들의 작품이 번역되어 출간되어 있지만 한창 주목을 받던 몇 년전에 비교하면 요즘은 이들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든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들 작가의 이름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이들의 작품을 읽어본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는 점이다. 나만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라틴 아메리카 문학을 꼽으라면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꼽을테니.(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브라질 작가인 바스콘셀로스의 작품이라는 사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한다.)
미술? 영화의 덕으로 많은 사람들이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에 대해 알고 있지만, 대부분 이들 '개인'의 작품 세계에 관심이 있을 뿐이지 이들과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연결지어 생각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나마 디에고 리베라는 '예술가'라기보다는 프리다 칼로의 '바람둥이 남편'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도 많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수많은 나의 친구들이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알고있는 전부일거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에 대해 대대적으로 다루는 전시가 국립현대미술관 주도로 열린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방학을 맞아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평일 낮에도 많은 관람객이 미술관을 찾은 모습을 확인할 수 있어서 라틴 아메리카 미술도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전시는 20세기 초부터 1970년대까지의 시기를 다루고 있으며 총 네 부분으로 나뉘는데 간략한 전시의 의도와 성격은 다음과 같다.

'I. 세계의 변혁을 꿈꾸다-벽화운동'은 1910년 멕시코 혁명의결과 1920년대부터 나타난 벽화운동에 참여한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한다. 디에고 리베라, 다비드 알파로 시케이로스 등의 대가들이 이에 해당하며, 이들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예술이 사회 변혁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보여준다.

'II. 우리는 누구인가-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은 서유럽의 식민지로서의 역사와 인종문제 등을 다룸으로써 자신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준다는 것이 전시의 의도이다.

'III. 나를 찾아서-개인의 세계와 초현실주의'에서는 1940년대 이후 본격화된 라틴아메리카의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작품과, 직접적으로 초현실주의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개인의 영역을 작품에 끌어들이면서 무의식중에 초현실적 면모를 보이는 작품들을 모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이 이에 해당한다.

'IV. 형상의 재현에 반대하다-구성주의에서 옵아트까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미술과 다른 방향의 발전양상을 보인 라틴아메리카의 미술 흐름에 대해 다룬다. 전쟁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었던 유럽이나 미국에서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처럼 인간 실존에 대해 고민한 작품들이 주류였던 것과 달리 전후 경제적 호황을 누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근대화에 대한 희망과 함께 기하 추상이 주도하게 되었으며 환경미술의 일환으로 옵아트와 기하학적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는 것이다.

다만 아쉬웠던 점은, 전시와, 전시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 미술이 우리에게 결코 익숙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시장 내에서의 설명은 팜플렛과 전시장 입구의 전시 개요(팜플렛의 설명과 같은), 작품의 객관적 정보를 담은 라벨이 전부이다. 대부분의 관람객이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사전정보가 없으며, 특히 어린 학생 관람객이 많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작품의 감상과 함께 이러한 사전정보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비록 1시간에 한 번씩 도슨트의 전시 설명이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1시간여에 불과한 짧은 시간동안 역사적 배경과 미술사적 배경, 주요작품 설명을 모두 충실하게 진행하기는 역부족이다. 도록에는 다양한 정보가 수록되어 있고 미술관 홈페이지에도 전시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충실하게 올려두기는 했지만, 과연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미리 공부하고 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할 때 이 점은 좀 더 고려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또 하나의 아쉬운 점은 프리다 칼로의 원숙기 작품이 없다는 점. 공교롭게도 프리다 칼로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에서 회고전 및 특별전이 진행되고 있어서 작품을 유치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고 한다. 미술관은 고민 끝에 프리다 칼로의 출생지인 코요아칸에 있는 작은 미술관에서 그녀의 초기작품 7점을 대여할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미술관의 총 소장품이 7점이었다나...현재는 모든 작품을 한국에 대여해 주고 텅 빈 이 미술관에서 백남준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고 하니, 프리다 칼로의 대표작을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상쇄해줄 만큼 흥미진진한 뒷얘기가 아닐 수 없다. 여차저차해서 한국에서 빛을 보게 된 프리다 칼로의 작품들은 크기가 작은 습작 들이고 이후 작품과는 분위기가 전혀 다르지만 군데 군데에서 이후 작품의 자취가 느껴진다는 점이 재미있다.

Frida Kahlo_프리다 칼로_코요아칸의 프리다_종이에 수채화_16×21cm_1927
ⓒ 2008 Banco de Mé×ico Diego Rivera & Frida Kahlo Museums Trust.
Av. Cinco de Mayo No.2, Col. Centro, Del. Cuauhtémoc 06059, Mé×ico, D.F.
(출처는 네오룩 http://neolook.com)



이 전시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이 전시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전시는 우리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알고 있고, 생각하는 그 정도 이상의 것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이는 전시에서 다루고 있는 시기가 1970년대까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전시를 기획하는 미술관의 시각이 너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두 번째 파트인 '우리는 누구인가-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체성'에 해당하는 전시실에 입장하면 전시 첫 부분은 여성의 누드로 채워져 있다. 흑인여성, 원주민 여성, 혼혈 여성, 백인 여성의 누드가 이어지고 있다. 기획 의도는 이러한 다양한 인종의 모습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의 인종적 정체성 문제를  이들은 남성 작가와 관람자에게 보이는 '대상'으로 존재한다. 에밀리아노 디 카발칸티의 <바이아의 흑인 여인(1956)>을 예로들면 이 작품에서 작가는 그녀의 피부색, 독특한 얼굴 생김, 풍만한 육체에 주목한다. 작품 속 여인은 두 팔로 머리를 받친 채 눈을 감고 무방비 상태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으며 관람자는 아무런 거리낌없이 그녀의 몸을 감상할 수 있다. 다른 작품 속 여성들도 감상의 대상인데는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이 파트에 전시된 다른 작품들 역시 라틴 아메리카의 농업, 자연 풍경, 민속 미술 등에 관한 작품들이 대다수인데 이런 점은 자칫 그들의 정체성을 기이하고 이국적인 풍속 정도로 받아들이게 할 여지도 있다고 여겨진다.

전시에 대해 불만족스러운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내가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진부한 얘기지만 아는만큼 보이는 법이니. 비록 이 전시를 통해 라틴 아메리타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거나, 새삼 그들에게 매력을 느낀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라틴 아메리카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멕시코 등등등등 각각의 나라에 대해서도 더욱 많이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사실이다. 이런 점이 이 전시의 의의가 아닐까.

일시: 2008.07.26-2008.11.09,
장소: 덕수궁미술관(월요일 휴관)
가격: 10,000(협찬사인 SK에너지 엔크린 마크가 있는 카드를 가져가면 할인혜택 있음)

 

by puella | 2008/08/12 14:48 | 그림읽기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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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은사자 at 2008/08/13 20:55
라틴 아메리카는 정말 저의 로망이예요. 언젠가 꼭 가는게 꿈이예요.
혹시 라틴 아메리카의 미술 관련 책이 있나요?
(참, puella님의 추천 덕에 올 여름 곰브리치와 함께 즐거운 시간 보냈답니다.
지난 주에 막 끝마쳤어요. 감사해요!)
Commented by puella at 2008/08/14 09:34
시공아트 시리즈 중에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미술>이 나와있어요. 저는 아직 안 읽었지만 이 시리즈의 명성을 생각해볼때 괜찮은 책일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라틴 아메리카 미술 같은 경우에는 주류 미술사에서 변방에 해당되기 때문에 평가 절하된 경향이 있어요. 연구도 많이 되어 있지 않구요. 최근 몇년 사이 부각이 되고 있으니 앞으로는 상황이 좀 달라지겠죠.
곰브리치를 끝내셨다니!!대단하세요. 실은 그 책 술술 읽히는 타입의 책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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