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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같은 파스텔화, 로살바 카리에라

은사자님의 최근 포스팅들에 자극받아,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려고 합니다.(작심삼일 될듯하지만) 오늘 포스팅하려는 로살바 카리에라(1675-1757)는 베네치아 출신의 여성 화가로, 당대에 누린 명성에 비해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화가입니다. 그녀는 초상화가로 전 유럽에 걸쳐 인기를 얻었으며 어린 시절의 루이 15세, 메디치가의 코지모 3세를 비롯하여 많은 군주들과 귀족들이 그녀에게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명성으로 인해 당시 남성에게만 허용되었던 아카데미에 예외적으로 입회하기도 했죠.

그녀가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파스텔을 초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도입한 최초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파스텔은 드로잉과 페인팅의 중간 정도의 성격을 한 매체로 로살바 카리에라 이전에는 주로 습작에 사용되었습니다. 카리에라는 파스텔을 이용하여 놀랄 만큼 섬세하고 세련된 표현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원숙기 작품 <앵무새를 든 젊은 여인>(c. 1730,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소장)은 파스텔이라는 매체의 매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작품입니다. 작품 속 여인의 머리칼을 장식한 리본, 꽃, 보석의 섬세한 표현이 돋보이고, 여러 색을 사용하지 않고 흰색, 푸른 색, 붉은 색만을 주조로 사용한 점도 카리에라의 센스를 보여주는 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녀의 작품에 나타나는 부드러운 명암 표현은 1923년 모데나 방문시 코레지오의 그림을 보고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이 작품에서도 그렇지만 그녀는 흰 종이위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주조색과는 대비되는 색의 종이에 파스텔을 눕혀서 덧칠하는 방식을 사용했는데 그녀가 개발한 이 ‘드라이 브러시 테크닉’은 그녀가 많은 추종자와 제자를 거느리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Young Lady with a Parrot, c. 1730
Pastel on blue laid paper, 59.8x 50cm,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Helen Regenstein Collection
(출처는 The Art Institute of Chicago Website)


여성 작가들의 경우 남성을 모델로 해서 그리는 경우가 매우 드문데, 특히 여성이 ‘직업화가’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여성이 그릴 수 있는 대상은 가족이나 고용인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여성화가에게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게 할 남성 의뢰인도 없었을 것입니다. 로살바 카리에라 역시 그녀가 그린 대부분의 인물이 여성이라고는 합니다만 남성의 초상화도 종종 그렸다는 점에서 독특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이것은 정말정말정말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왠지 로살바 카리에라의 진가는 ‘소년’을 그릴 때 드러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작가들은 잡아내지 못하는 소년의 연약한 면을 포착해내고 있다고나 할까?물론 그녀가 그린 ‘여성’도 ‘소녀’도 아름답지만 그녀가 그린 ‘소년’은 얼굴 전체에서 ‘나는 아름다워요’라는 아우라를 뿜어낸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로살바 카리에라가 그린 소년들이 너무 좋아요. 보고만 있어도 망상이 솟구친달까요?

Portrait of Henry Fiennes Clinton Pelham-Clinton

9대 링컨 백작이자 2대 뉴캐슬 공작인 헨리 피에네스 클린턴 델햄-클린턴의 초상화입니다. 그는 그랜드 투어중에 이탈리아를 방문했고 이 때 카리에라에게서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는 작가 호레이스 월폴과 절친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찰스 새크빌의 초상, 1730(출처는 저메인 그리어, 『보이』, 서울: 새물결, 2003)

‘그랜드 투어’란 당시 유럽 상류층에게 유행처럼 번졌던 이탈리아 여행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가 방학마다 유럽에 못가서 안달인 것처럼 그들도 젊은 시절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죠. 특히 베네치아는 카니발 시즌에 어마어마한 관광객이 몰려들었고 특히 영국의 귀족 젊은이들이 많이 찾았다고 하는데 이들에게 로살바 카리에라는 가장 인기있는 초상화가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이후 도싯 공작 2세가 되는 찰스 새크빌(당시 19세) 역시 그랜드 투어 중에 카리에라에게 초상화를 그렸는데 로살바는 그를 대신해 베네치아의 한 여인에게 구애하기도 했다나요?
Portrait of Lord St. George (1715 - 1775)
Pastel, 56 x 43 cm
2006 purchase for the Alte Pinakothek


뮌헨 알테 피나코텍에 있는, 작은 파스텔화입니다. 이 소년이 누구인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성장했는지 저는 모릅니다만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사랑스러움에 눈이 멀 뻔;;;

Portrait of a Boy
1725-26
Pastel on paper, 34 x 27 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프랑스 영사인 Le Blond가의 아이를 그린 초상화입니다. 아직 어린 소년의 우수어린 표정이라니. 약간 병약하지만 총기있고 독서를 좋아하는 미소년으로 성장했을거라는 기대를 품어봅니다.


그 외.

Young Lady of the Le Blond Family
c. 1730
Pastel on paper, 34 x 27 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역시 르 블롱가의 소녀입니다. 위의 아이와 남매쯤 되겠죠. 역시 사랑스러운 아이입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빵일까요? 아니면 장난감? 파스텔의 부드러운 특성 때문인지 어린 아이를 그리면 정말 사랑스러운 느낌이 납니다.

Cardinal Melchior de Polignac
c. 1732
Pastel on paper, 57 x 46 cm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로살바 카리에라가 그린 성인 남성으로, 프랑스인 추기경인 멜키오르 드 폴리냑입니다. 로살바 카리에라 파스텔화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고 뛰어난 작품입니다만... 어린 소년을 그린 쪽이 좋아요.

Self Portrait, 1715


여동생의 초상화를 든 로살바 카리에라의 자화상입니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몇 명의 제자를 두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자신의 조수이기도 했던 여동생 지오바나 입니다만 그녀는 1737년 사망하고 맙니다. 동생의 죽음은 로살바 카리에라를 깊은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고 1740년대에는 그녀 자신이 실명에 이르는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이 자화상을 비롯하여 몇 점의 자화상을 보아도 그녀는 특별히 미인이라고 할 수 있는 얼굴은 아닙니다. 오스트리아의 카알 6세가 그녀에 대해 “정숙한 여자 같지만 별로 아름답지는 않다”라고 언급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니까요. 그녀가 미술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데에는 이런 요인도 있을 것입니다. 위대한 작가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의 이미지도 중요하니까요.

근데 블로그에 글 쓰는 게 생각보다 쉽지가 않네요. 레포트용 글쓰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지 딱딱하지 않은 글을 쓰는 게 참 어렵습니다. 중간중간 안드로메다로 가려는 정신을 붙잡기도 힘들고 말이죠. 혹시나 로살바 카리에라 혹은 다른 여성 화가들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면 아래의 책들을 추천해요.

*참고문헌

김홍희, 『여성과 미술』, 서울: 눈빛, 2003

크리스티나 하베를리크, 이라 디아나 마초니 저, 정미희 역, 『클라시커 50 여성미술가』,서울: 해냄, 2002

저메인 그리어 저, 정영문, 문영혜 역, 『보이』, 서울: 새물결, 2003

Bernardina Sani, Rosalba Carriera's "Young Lady with a Parrot", Art Institute of Chicago Museum Studies, Vol. 17, No. 1, Italian Drawings at the Art Institute: Recent Acquisitions and Discoveries (1991), pp. 74-87+95

by puella | 2008/08/26 16:57 | 그림읽기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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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은사자 at 2008/08/27 10:50
오- 이런 포스팅 너무너무 좋아요 /^^/ 역시 전공자가 들려주는 그림이야기는 차분하니 재밌는걸요. 그나저나 흑...예나 지금이나 그넘의 외모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그림들 너무 좋으네요. 자화상도 그렇고 그 바로 위의 소년 그림도 그렇고. 이런 포스팅 종종 해주셔요-
Commented by puella at 2008/08/27 19:02
그러게요. 근데 신기하게 19세기 이전 여성 화가 자화상을 보면 미인이 많더라구요. 카리에라는 별로 유명한 화가는 아니에요. '여성'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파스텔'을 사용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여러모로 학자들의 관심을 받는 작가는 아니죠. 연구도 많이 되어있지 않구요.
Commented by mattathias at 2008/10/18 03:27
멋진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좋은 내용이에요.
Commented by puella at 2008/10/18 11:19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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