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감상

대학원에서 르네상스 미술 수업을 들었을 때였다. 첫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르네상스 시대 작가들의 명단을 가져오셔서 한명 한명 칠판에 쓰시고 이 중 한 작가를 골라 기말에 발표하라고 하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만테냐, 티치아노, 보티첼리 등등등.
놀랍게도 마지막까지 누구에게도 간택받지 못한 작가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이다. 누군가가 명단에 없던 브뤼겔을 발표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폐기되었고, 결국 누군가는 울며 겨자먹기로 미켈란젤로를 맡았지만 개인 사정으로 휴학하고 말았다. 그래서, 난 지금도 이 둘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미켈란젤로.
서양 미술사에 대해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그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으며 유명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 그 중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유명한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개인사 역시 여러 소설이나 심지어 만화를 통해 여러번 다루어졌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코가 삐뚤어진, 못생겼지만 매력적인 단단한 체구의 청년. 다혈질에다 여자를 싫어하고 미소년을 좋아했으며, 누구보다 예술에 대해 열정적이었던 인물이라고.....
작품과 관련된 일화도 여러 가지가 알려져 있다.(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피에타>를 조각했을 때, 사람들이 모두 그 조각에 대해 경탄하면서도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일 것이라고 여기자 밤에 몰래 다시 돌아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고 왔다거나,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천장 아래 설치한 지지대에 누워서 그림을 그렸다거나 하는 일화들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 작가이지만, 이런 단편적인 이미지가 아니라 그의 본질, 즉 그가 어떤 개인사적 배경을 가지고, 어떤 시대 상황속에서 어떤 이유로 그런 작품들을 남겼는지에 대해 종합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오히려 쉽지 않은 작가이다. 혹시라도 당신이 유럽 여행 중에 바티칸에서 시스티나 천장화를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미켈란젤로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으며,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그에 대한 책이라도 한권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했다면. 그 결심은 물론 칭찬해줄만 하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당신이 접하게 되는 것은 일종의 당혹감일 것이다. 인터넷 서점 아무곳에라도 가서 '미켈란젤로'를 치면 수십 수백개의 책이 나올 것이다. 한국어로 된 책의 종류만 해도 수십 종에 시스티나 천장화에 대한 책만 해도 벌써 몇 종이나 출간되었다.(그래24 미켈란젤로 검색결과 총 212종. 2009년 2월 현재)
혹시라도 당신이 미술사와 관련된 레포트를 쓰기 위해 학술정보 데이터베이스에 접속해서 '미켈란젤로'를 입력했다면 이미 얼마나 많은 연구자들이 그에 대해 연구해 놓았는지, 심지어 대한민국에서만 벌써 몇편의 석사논문이 나왔는지에 놀라게 될 것이다.(다행히 박사논문은 없다)
혹시라도 당신이 미술사를 전공하고 있고 미켈란젤로에 대한 졸업논문을 쓰고 싶어 지도교수님과 상담했다면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실 것이다. "미쳤구나."(입밖으로 내시지 않더라도 속마음은 그렇게 말씀하실것이다.)

뭔가 중간에 잠시 삼천포로 샌 기분이 들지만, 어쨋든 미켈란젤로에 대한 책은 너무너무 많으며 이 많은 책을 다 읽기도 어렵다. 그렇다고 한권으로 종합된 엄청나게 두껍고 세 페이지쯤 읽다보면 졸음이 몰려오는 전문 서적이나 지나치게 흥미 위주의 책들로 미켈란젤로에 입문하는 것은 절대 비추이다. 전자는 그나마 생긴 흥미의 싹을 잘라버릴 위험이 있고, 후자는 어느 정도의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읽으면 오히려 왜곡된 이미지만 생길 수 있는 '사도'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읽으면 좋을까? 로스 킹의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은 이제 막 미켈란젤로와 사랑에 빠진 입문자에게 여러 가지로 적절한 책이다. 우선 이 책은 미켈란젤로의 대표작 중 하나인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의 제작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당시 시대적 상황, 교황이던 율리우스 2세의 인간적 면모, 이탈리아와 유럽 정세가 천장화 제작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천장화의 내용에 영향을 미쳤던 미켈란젤로의 가족사, 그의 철학 및 신학적 배경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또한 이 천장화가 그려진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역사와 이 천장화가 최근 어떻게 복원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미켈란젤로와 시스티나 천장화에 대해 종적 횡적으로 종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많은 문헌들과 연구 결과들을 참조하여 역사적 사실과 이론들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의 장점은 이 책이 상당히 방대한 지식과 정보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딱딱하거나 지겹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인 로스 킹은 미술사 분야의 책을 주로 서술하기는 하지만 본래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문학전공자이기 때문인지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책 곳곳에서 느껴진다. 독자가 마치 로마의 거리를 걸어다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도록 생생하게 묘사하거나,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인물들의 심리나 상태를 서술하는 등 마치 소설처럼 시종일관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로스 킹의 글쓰기 방법은 이 책이 미켈란젤로를 다룬 다른 책들과 비교했을 때 가장 경쟁력 있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2002년에 출판된 이 책은 전문성과 대중성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읽으면서 단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읽고나서는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이 생기는 기특한 책이다. 읽고 나서 미켈란젤로에 대한 다른 책들과, 로스 킹의 또 다른 책들도 읽고 싶다는 지적 욕구가 생겨난 것은 덤.

+사족. 책에서도 여러 번 언급되었지만,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천장화를 누워서 그리지 않았다. 그는 그 그림을 서서 그렸다.
이 일의 긴장이 내게 남긴 것은 부어오른 갑산선종.
물을 잔뜩 먹은 롬바르디의 고양이처럼.
아니면 어딘가 다른 나라의 고양이일지도 모르지.
턱 밑으로 배는 불룩하게 밀려오고

턱수염이 하늘을 향하니 목덜미에 달라붙는 뒤통수가 느껴지네.
내 가슴은 하르피이아처럼 축 늘어졌고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붓에서 '뚝뚝' 떨어진 물감방울들이
내 얼굴을 영롱한 마룻바닥으로 만들어버렸다네.

내 허리는 올챙이배를 가로지르고
내 엉덩이는 평형추같은 말 엉덩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걷고 있는 이 발걸음의 무의미함이여!

팽팽하게 쫙 펴진 앞쪽의 살들만큼
뒤로는 접혀져 매듭을 이루니
나는 시리아의 활처럼 휘었다네.

바로 지금 내 머릿속에는
불충스러운 야릇한 생각들이 커져만 가네.
총구가 비뚤어져 있으면 천하의 자네라도 잘 쏠 수 없겠지!

조반니, 이 친구야
어서 와서 죽은 내 그림과 명예를 구해주게.
난 지금 좋지 않은 곳에 있어. 그리고 난 화가도 아니지 않은가.*

*The Letter of Michelangelo, vol. 1, p. 54, (로스 킹, 신영화 역, 미켈란젤로와 교황의 천장, 다다북스, 2007, pp. 227-228)

덧글

  • 여행유전자 2009/02/12 10:46 # 답글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너무 알려져서 발표하기 부담스러워서였을까요? :)
  • puella 2009/02/15 00:24 #

    그런 이유도 있고, 읽을 게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워서이기도 할거에요:)
  • 아이러브이태리 2016/11/05 21:12 # 삭제 답글

    몇 주 전 이태리 여행 이후, 미켈란젤로와 사랑에 빠졌어요. 이 책 너무 사고 싶은데 절판됐네요ㅠㅠㅠ 구할 방법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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