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 하나, 어느 봄날의 경주 여행

경주.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관광지이자 가장 알려지지 않는 관광지가 아닐까.
정상적인 중고등학교 생활을 영위한 한국인이라면 꼭 한번쯤은 가보았을 도시가 경주이다. 그 때문인지 모두가 이 도시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다시 가기에는 매력적이지 않은 도시로 여겨지기도 한다.(아니, 다시 가기에 매력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것은 수학여행이 재미없었기 때문일지도.)
하지만 실은 경주만큼 계절에 따라, 여행의 목적에 따라, 그리고 여행의 동반자가 누구인지에 따라 그 매력이 달라지는 팔색조같은 도시도 없을 것이다.

아마 '경주'하면 떠오른 가장 전형적인 이미지는 봄의 경주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수학여행의 달인 5월. 전국 각지에서 학생들이 몰려드는 달이다.  
중학교 2학년 때였던가, 3학년 때였던가? 우리 학교 역시 수학여행지로 선택한 곳은 경주였다.(요즘은 제주도나 해외도 수항여행지로 각광받지만, 우리때는 경주 아니면 설악산이었다.)
수학여행 중에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작은 방에 몇 십 명이 잘 수 있었던 숙소. 그리고 우리 방에 있던 소위 노는 아이들을 보러 소위 노는 남자애 중 한명이 방에 놀러왔고, 불심 점호 때문에 선생님 몰래 이불 속에 숨었었던 사건?  그 남자애가 반항적인 매력의 학교 일진 짱이었다면 조금 두근거리는 추억이 되었을 가능성도 있으나, 마침 그 애는 내가 초등학교 때 참 싫어하던 동창 중 하나였다는 것이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난 금방 자버렸기 때문에 그 소년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다음날 별 소동이 없었던 것을 보면 아마도 무사히 빠져나갔던 것 같다. 그 외에는 고속버스 속에서 끊임없이 잤던 것. 불국사나 문무대왕릉 앞에서 찍은 사진이 버젓이 남아있는 것을 보면 거기도 가보기는 했던 것 같은데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생각나지 않는다. 수학여행은 기억나지만 정작 그 수학여행의 목적지인 경주에 대한 인상은 희미한 것은 아마도 나뿐은 아니리라 믿어본다.

그리고 또 유명한 것이 벚꽃이 피는 계절의 경주.
경주의 벚꽃은 굉장히 유명하다. 경주역에서 보문단지로 가는 도로 옆에, 유적지 곳곳의 왕벚나무들은 최근 벚꽃축제 붐으로 각종 지자체에서 부랴부랴 심어놓은 가냘픈 벚나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우람한 풍채를 자랑한다.
거대한 벚나무 한가득 흐드러지게 벚꽃이 피는 풍경을 즐기기 위해 이 계절에도 역시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몰려온다. 경주 관광의 최고 성수기는 아마도 이때일 것이다. 기차표는 일찌감치 동나버리고,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방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남녀노소, 가족, 커플, 친구, 단체 온갖 사람들이 벚꽃길을 거닐며 사진을 찍는다...고 한다.

실은 나는 아직 흐드러지게 핀 경주의 벚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공교롭게도 작년 봄에 내가 경주에 갔을 때는 아직 벚꽃이 피지 않은 이른 봄이었다. 하지만 봄은 왔지만 아직 곳곳에 겨울이 남아있던 작년 3월 초, 벚꽃이 피기 직전의 경주도 나름대로의 운치와 멋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E는 아직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나도 아직 학교에 남아서 논문을 쓴다 못쓴다 한참 고민하던 때였다. 어느 금요일, 서로의 사무실에 앉아 메신저로 수다를 떨다가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다음 날의 호텔을 예약하고 기차를 예매하는 데 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재밌는 것은 우리가 고민하는 몇 십분 사이에 경주로 가는 새마을호는 일반석이 매진되어 결국 몇 천원이 더 비싼 특실을 예약해야만 했다는 것. 아마 우리처럼, 떠나고 싶었던 사람이 많았나보다.

그렇게 토요일 아침, 새마을호를 타고 수원을 출발해서 5시간가량 달렸을까? 벚꽃은 피지 않았지만 영천쯤 내려가니 길가에 피어있던 매화꽃인지 사과꽃인지 이름 모를 하얀 꽃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점심나절 기차는 경주역에 도착했다. 마중 나온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간 곳은 조금 오래되고 낡았지만 나름대로 고풍스러운 느낌을 주는 콩코드 호텔. 창밖을 내다보니 안개 낀 보문호수가 오히려 운치를 더하는 곳이었다.

호텔에 짐을 던져두고 호텔 앞 버스 정류장에서 현금 1500원을 내고 경주역까지 가는 좌석버스에 탑승.(우린 차가 없으므로) 역 앞에 있는 자전거가게에서 만원인가 만이천원인가를 내고 자전거를 빌렸다. 역 앞 관광안내소에서 얻은 관광지도와 김영사에서 나온 <잘먹고 잘사는 법 경주 편>에 의지해 자전거를 타고 대릉원과 계림과 안압지까지 횡단.

<반월성의 소나무>


잘 알려진 사실이기는 하지만 경주는 자전거로 관광하기 참 좋은 도시다. 주요 관광지는 시내에 밀집되어 있고 오르막이나 내리막이 없이 완만한 평지에 도로 사정도 좋은 편이라 여성이나 노약자도 큰 무리없이 자전거로 이동할 수 있다. 특히 봄에는 도시 곳곳에서 자전거를 타고 관광하는 사람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2인용 자전거를 탄 염장 커플이나 3, 4인용 자전거를 탄 가족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다. 게다가 대중교통이 가지 않는 시내 외곽의 관광지도 체력에 조금만 여유가 있다면 자전거로 갈 수 있으므로, 꼭 차가 없어도 경주의 다양한 모습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자전거는 자전거포에서 빌려준 자물쇠 하나만 있으면 주차장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주차료도 들지 않으므로 일석이조.

<바구니달린 빨간 자전거, 빌릴 때 잊지말고 자물쇠도 빌려야 한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중간중간 내려서 걸으며 경주의 유적들과 아름다운 나무들을 즐기다보니 어느 새 하루해가 저물었다. 초봄이라 아직은 쌀쌀하고, 마침 이날은 날이 흐렸기 때문에(다음날은 비가 왔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기에는 최적의 조건이 아니었나 싶다. 날씨때문이었는지 조금은 쓸쓸하고, 고요하고, 쉽게 감상에 젖게 되는 날이었다.
마침 벚꽃시즌 직전의 비수기라,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아 여유롭게 경주를 즐길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물론 그 당시에는 '사람이 없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성수기에 방문해보고 깨달았다.) 단체여행객과 인파에 방해받지 않고 오로지 '나만의' 경주를 느끼고 싶다면, 남들이 가지 않는 비수기를 골라 경주를 방문해 보는 것은 어떨까?
덤으로 호텔비도 훨씬 싸다.
그냥 쉬다 올 마음으로 갑자기 갔던 여행이라, 사진은 모두 즈질 폰카.

덧글

  • 2009/09/11 05:4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uella 2009/09/11 18:15 #

    오오오오!!!!맞아요!!!어머머머!!!어쩐지 비밀님 볼때마다 친숙한 기분이 들었던 이유는 이래서군요!!!!
  • 김가연 2010/05/28 20:05 # 삭제 답글

    무슨 말이세요
  • puella 2010/05/29 15:33 #

    무슨 말이세요?
  • 꼬마줌마 2010/06/05 12:08 # 삭제 답글

    안녕하세요^^ 여행후기 참 잘봤어요~^^
    사실 제가 6월 30일부터 7월2일까지 혼자서 경주배낭여행을 하려고
    계획중인데요.. 혼자하는 여행이 첨이라 걱정도 되고 떨리기도 하고해서
    네이버 검색하다가 여기 까지 오게됐네요^^
    경주에서 어떤코스로 다녀오셨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혹시나 참고가
    되지않을까 싶어 이렇게나마 염치없지만 글 남겨보아요^^
    혹 추천해주시고픈 코스가 있으시다면 추천좀,, 부탁드려요^^
    제 답글이 혹시나 기분이 나쁘셨다면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당..^^
  • puella 2010/06/07 17:44 #

    혼자서 2박 3일!!! 일단 여행 일정은 숙소랑 교통편에 맞춰서 짜시게 될 것 같지만, 몇가지 추천 드리면.
    보문단지- 보통 숙소는 보문단지에 많이 잡아요. 가격대비 시설제일 좋은 건 제생각엔 현대호텔인 것 같고 콩코드호텔 코모도호텔은 조금 낡은 느낌이긴 하지만 저렴하고 조용해요. 보문에 숙소 잡으시면 가볍게 호수 관광, 현대호텔 근처에 사격장 정도 이용가능한데 혼자가시면 이건 별로 재미 없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시내관광- 첨성대, 천마총(대릉원), 계림 등은 붙어 있어서 한번에 볼 수 있어요. 역에서 자전거 빌리셔서 한번에 돌 수 있고, 안압지도 약간 멀기는 하지만 자전거로 갈 수 있어요. 안압지는 꼭 저녁이나 밤에 가셔야 야경을 즐기실 수 있답니다.
    대릉원 근처에서 황남빵 꼭 드세요. 경주에 널린 게 경주빵과 찰보리빵인데 황남빵이 원조에요. 가셔서 갓 나온 걸 낱개로 사서 그자리에서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황남빵 본점 옆에 편의점에서 흰 우유 하나 사가셔서 매장 안에 있는 테이블에서 빵이랑 같이 먹으면 최고랍니다.

    선덕여왕릉, 김유신릉 등은 조금 외곽에 있어서 실은 전 어렸을때밖에 안가봤어요. 혹시 차를 가져가시거나 렌트하시면 선택의 폭이 조금 넓어질 듯하네요.

    2박 3일이면 바다 가실 여유도 있으실 것 같아요. 꼬마줌마님이 가시는 시기에 아마 해수욕장은 개장 안하지만, 그래도 바다에 발 담그실 수는 있으실 듯. 경주 근처에 해수욕장이 4개 있는데, 검색해 보시고 가장 맘에 드는 곳에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감은사지랑 문무왕릉을 함께 갈 수 있는 봉길 해수욕장을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남산은, 저도 안가봤지만 실은 가보고 싶은 곳이라서 추천!

    이렇게 답글 쓰다보니 저도 또 가고싶네요^^ 즐거운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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