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푸드 포르노의 최고봉, 홍루몽 감상

대표적인 중국 고전문학이지만,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조설근과 고악의 '홍루몽'
줄거리는 요약하면 우유부단한 부잣집 도련님 가보옥, 청순하고 병약한 미소녀 임대옥, 활발하고 여자다운 성격의 설보채 세 젊은이 사이의 사랑놀음?

아무튼 주인공들이 상류사회 인간들이기 때문에 청대의 화려한 생활상과 중국문화의 진수를 볼 수 있는 작품인데,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특히 기억에 남는 건 각종 음식들.
홍루몽을 통틀어서 술酒자만 500번 넘게 나온댔던가...홍루몽의 세계 속에서 인물들은 일상적으로 매일의 식사를 하고, 손님 접대하면서 먹고 연회 벌이면서 먹고, 먹고 먹고 또 먹는다.

우선 일상적인 식사의 기본 형태는 곡류로 만든 밥이나 죽이 기본이 되어 여기에 요리가 곁들여지는 모습으로 전형적인 중국 요리의 모습을 띤다. 아침식사로는 두부껍질만두(제 8회)나 죽과 같이 위에 부담이 가지 않는 가벼운 음식을 먹었다.
고작 이 정도로 먹은 거면 푸드 포르노의 자격이 없다.

아까도 언급했지만 주인공들이 상류사회의 일원이기 때문에 항상 산해진미를 즐긴다.
호화로운 중국요리, 팔보채 라조기 이런 게 아니라 나로서는 듣도보도 못한 미식들.

책 속에 등장하는 구체적인 음식들을 살펴보면 거위발을 절인 요리, 죽순을 넣은 닭 껍질탕(제 8회),연와탕(燕窩湯, 제 10회), 매실탕, 장미즙, 향료즙(제 34회), 연잎과 연실을 넣은 탕(제 35회), 비둘기의 알(제 40회), 꿩병아리국(제 43회), 사슴고기(제 49회), 지게미에 담근 메추라기(제 50회) 등...
 
이름만 들어도 매우 호화롭다.

이렇게 희귀하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조리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갔는데, 소설 속에 직접 언급되는 가지전 만드는 방법을 예로 들면 다음과 같다.

“만들기는 어렵지 않아요. 갓 딴 가지를 갖다 껍질을 발라버리고 살만 실같이 가늘게 썰어서 닭기름에 튀긴 다음 삶아 말린 닭고기에 참버섯, 죽순, 버섯, 향미료를 넣고 말린 두부, 갖가지 과일들을 다 가늘게 썰어 섞어 가지고 닭고기탕에 졸인 다음 참기름을 치고 콩기름을 더 쳐서 사기단지에 넣고 밀봉해두었다가, 먹을 때 꺼내서 볶은 닭고기에 섞으면 돼요.”(중국 조설근·고악, 연변대학 홍루몽 번역소조 역, 『홍루몽』제 3권, 예하, 1990.p.17.)

만들기는 어렵지 않아요.
만들기는 어렵지 않아요.

아무튼.

차도 엄청 마셔댄다. 홍루몽에 등장하는 술과 차 중에서 몇 가지만 언급한다면 풍로차(楓露茶, 제 8회),혜천주(제 16회),육안차(六安茶)와 노군미차(老君眉茶,제 41회)등...근데 이렇게 써놔도 무슨 차인지는 잘 모르겠다. 먹어본 적이 없어서.
차와 함께 먹는 다과도 평범한 과자나 떡 외에 연뿌리 분말에 계화가루와 사탕가루를 섞어 쪄낸 과자와 잣을 넣고 거위기름을 발라 만든 타래과자, 소젖에 튀긴 밀가루 과자(제 41회)등...

먹는 얘긴 여기까지, 홍루몽 얘길 하면.
홍루몽은 푸드 포르노이긴 하지만 포르노는 아닌데, 홍루몽을 굉장히 야한 소설로 알고 있는 경우가 있다.
조설근과 고악의 홍루몽을 토대로 조성기씨라는 분이 다시 쓰신 97년 민음사판 홍루몽이 있는데, 이게 실은 엄청 야해서...
고등학교 때 인기리에 돌려가며 읽었더랬다. 근데 왠지 지금 다시 읽으면 별거 아닐지도...
그리고 대학에 가서 수업과제 때문에 다시 읽게 되었는데, 조성기 버전이 남녀의 애정사에 초점을 맞췄다면 원작은 이보다 폭넓은 범주를 다루고 있었다. 음식 관련된 부분도 민음사 버전에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이고.
근데 몇몇 애들은 조성기 버전 읽고 와서 제대로 과제를 하지 못함;;;


짤방은 중국산 연애 시뮬레이션 '홍루몽'의 주인공 임대옥과 설보채 오오!대륙의 그래픽이 이 정도로 발전했단 말인가!!!
암튼 이글루스 프님의 푸드 포르노 예찬 '내 식탁위의 책들' 주문하면서 2009년 새롭게 나온 홍루몽 전집도 구입-_-
이번 주말은 위꼴書들과 함께 보내는 알찬 한주가 될 예정.

덧글

  • JOSH 2012/05/04 19:36 # 답글

    슈릅~
  • puella 2012/05/04 19:48 #

    짜파게티라도?
  • 니케 2012/05/04 19:39 # 답글

    풍로차랑 노군미차는 뭔지 모르겠고 육안차는 흑차의 일종이에요.
    다른 흑차는 마셔본 적이 있는데 육안차는 저도 아직 못 먹어봐서 뭔 맛인지는 모르겠어요.
  • puella 2012/05/04 19:53 #

    저도 풍로차랑 노군미차는 홍루몽에서만 들어봤어요. 육안차는 흑차군요!! 홍차도 블랙티인데 홍차랑은 다르겠죠?
  • 니케 2012/05/04 20:05 # 답글

    중국 6대 차류에서는 홍차는 우려낸 차의 색이 붉어서 紅茶 라고 해요.
    외국에선 찻잎의 색이 검다고 해서 black tea 라고 하고요.

    홍차와 흑차는 일단 달라요. ㅎㅎ
  • puella 2012/05/04 20:13 #

    그렇군요!!차의 세계도 배울 것이 무궁무진해요.
  • 귤괭 2012/05/04 21:38 # 답글

    안녕하셔요, 홍루몽 얘기가 반가와서 들어왔습니다 ^ ^

    홍루몽의 백미는 저 온갖 산해진미에도
    나는 이거 싫은데
    나는 이거 안 먹어
    하고 까탈스럽게 밥투정하는 아가씨들이 아닐까 해요.

    보채가 보내준 꿀에 절인 여지에 손도 안 대는 대옥이랄지,
    기름진 음식 물린다고 쑥갓볶음 찾는 청문이랄지, (얘는 하녀인데도 까다롭네요)
    유노파가 시골에서 보내주는 향토음식들이 대관원에선 신기한 선물이 되고..

    금병매에도 술안주 얘기가 제법 나오는데
    '푸드 포르노'로는 별로 주목을 못 받는 거 같아요 ;;

    아, 그리고 홍루몽에 등장하는 육안차가 안휘성 녹차 六安瓜片인지,
    청대에 나오던 복건쪽 흑차인지는 얘기가 분분해요. (저는 녹차로 생각했는데 자료 찾아보니..)
    노군미도 녹차 노군미냐 우롱차 노군미냐, 가모가 육안차를 왜 안 마셨느냐,
    왜 노군미를 육안차로 잘못 보았느냐, 막 논문감이에요 ㅎㅎ
  • puella 2012/05/05 08:48 #

    귤괭님, 어디서 이런 강호의 숨은 고수가 지금에야 나타나신건가요?!!!
    알고보니 진짜 논문 쓰신 거 아니에요?
    저도 하도 예전에 읽어 가물가물한 부분도 있었는데 재독할 땐 귤괭님이 짚어주신 포인트-밥투정-에 유념할게요ㅎㅎㅎㅎ
    육안차는 그나마 등장한 차중에서 유일하게 정보가 있던 차인데 안휘성 말고 다른 설이 있군요. 어차피 다 안마셔봤으니 들어도 감은 잘 안오지만ㅠㅠ
    중국에선 홍루몽 음식 재현한 홍루연이란 것도 한다는데 먹어보고싶어요!!
  • 에로거북이 2012/05/04 22:20 # 답글

    "중국산 연애 시뮬레이션 '홍루몽'의 주인공 임대옥과 설보채 오오!대륙의 그래픽이 이 정도로 발전했단 말인가!!!"

    재팬 미연시에 뒤지지 않는 고퀄입니다 진짜. ㅎㅎ
  • puella 2012/05/05 08:50 #

    예전에 일본에서 홍루몽 소재로 성인게임 만들어서 외교문제로 비화될 뻔 했다는데, 그래서 저도 첨에 이게 그건 줄 알았어요.
    근데 중국자체제작이더라고요.
  • 2012/05/04 22:5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puella 2012/05/05 08:53 #

    원본에 현대적 감각을 가미하여 신 하나하나를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했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절판되었는데 도서관 등에서 볼 수 있으실 듯. 빨간표지에 두권짜리. 얇기도 하고 술술 읽힙니다.
  • 진냥 2012/05/05 00:50 # 답글

    요리법이나 재료가 너무 난해해서 맛이 상상이 안 가는 탓에 오히려 위가 꼴리지 않는 함정이 있습니다..ㅠㅠ
  • puella 2012/05/05 08:56 #

    가지의 살을 발라 닭고기탕으로 익혀 묵혔다먹는 건 무슨 맛일까요? 그리고 그게 왜 가지전인지?!!!새로운 번역으로 다시보면 그 맛이 상상될까요?
    저도 태반이 못먹어본거라 맛이 상상 안되긴하지만 마음의 눈, 아니 마음의 혀로 느껴보려고요. 세상에서 제일맛있는 음식은 아직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라고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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